배상수 교수 생화학교실

인생을 걸 만큼 흥미로운 분야와의 만남

서울의대 생화학교실의 배상수 교수는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유전자 교정을 연구하고 있다. 그에게는 흥미로운 이력이 있는데, 바로 물리학과 출신의 기초의학 교수라는 것이다. 그가 생화학 분야로 뛰어든 이유 중 하나는 1962년 노벨상을 받은 ‘생물학자 왓슨과 물리학자 크릭의 공동 연구’였다.

“물리학자가 생물학에 크게 기여를 했다는 것이 상당히 신선했습니다.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언젠가는 의생명과학에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선택한 것이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유전자 교정 분야였습니다.”

최근 유전자 교정 분야는 굉장히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기존의 기술의 문제점을 찾아, 그 문제점을 극복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등 연구가 매우 활발하다. 하지만 유전자 교정은 201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분야였다. 만약 부모에게 질병이 있는 DNA가 있다면 자식에게도 전해지고, 똑같은 질병을 앓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제는 그 DNA를 고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과학자가 꿈이었으니 ‘인생을 걸 만큼 흥미로운 주제를 만난 것’이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는 물리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서 물리학을 선택했는데, 공부와 연구는 조금 다른 영역인 것 같습니다. 연구는 내가 궁금한 것을 풀어내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유전자 가위를 접했을 때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생물학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유전자 가위’라는 흥미로운 분야와의 만남이 그를 자연스럽게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셈이다. 더불어 물리학을 공부해서 근본적인 것과 작동 원리 등에 관심이 많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른데, 그런 것들이 은연중에 묻어 나와 지금 연구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한다.

때로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우리는 인생의 전환점을 앞에 두고, 새로운 길에 대한 위험이나 부담감 때문에 망설이곤 한다. 배상수 교수도 처음에는 실패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남들은 10년을 공부해서 가는 분야인데, 이제 시작해서 할 수 있겠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전자 가위’라는 분야가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성공과 실패’를 따지지 않고 도전했고, 그에게 후회는 없다.

“대단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다들 한 번씩은 들었을 것 같은데, 미래에 대한 낙천적인 마음인 것 같아요. ‘하다 보면 잘 되겠지, 그렇다면 재미있는 걸 해보자’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배상수 교수는 때로는 미래에 대한 ‘근자감’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했다면 앞뒤 재지 않고 과감하게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이 필요하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전환점 앞에서 고민하고 있을 의대생들에게 조금 더 창의적인 사람, 틀을 깨는 사람이 되라 조언한다. 의대생은 대부분 정해진 길을 걷는다. 하지만 새로운 치료법을 만드는 사람, 나아가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영역까지 가야 한다고 말한다.

“안전하고 획기적인, 새로운 유전자 교정 기술을 개발하는 것, 그 기술을 통해 환자를 근원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서울의대에서 의사과학자 또는 의과학자를 양성하고 싶습니다.”

물론 내가 흥미로워 선택한 연구에도 힘든 순간은 있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유전자 교정 분야는 경쟁적으로 논문이 쏟아져 나오는, 소위 말하는 ‘핫한’ 분야이다. 연구 결과를 목전에 두고도 남들보다 한발 늦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순간이 오면 그는 잠시 연구 스위치를 내린다. 유튜브를 보거나 음악을 듣고, 산책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머릿속 ‘연구’에서 완전히 벗어나 시간을 보낸다.

우홍균 교수 방사선종양학교실

인생이라는 흐름 속의 한 계단

서울의대 방사선종양학교실의 우홍균 교수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한방사선종양학회장으로 지난 10월 학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방사선치료에 필요한 액세서리를 개발하고 제작하는 파프리카랩의 대표로 방사선 측정기 등을 만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꿈의 암 치료기’라 불릴 만큼 많은 사람의 기대를 받고 있는 의료용 중입자가속기구축사업의 단장을 맡아 사업을 이끌고 있다. 그런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인생이라는 흐름 속에 있는 하나의 계단이다.

“전환점이라고 해서 큰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내재해 있던 것들이 나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업그레이드 같은 거죠.”

우홍균 교수가 중학교에 다니던 때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떠올리면 상상하기 쉽다. 그 시절 우리나라는 가난했고, 학교는 억압적이고 폭력적이었다. 그래서 일본으로 이사를 하며 느낀 ‘자유’가 더 크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일본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던 그는 공부 대신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도쿄 구석구석을 누볐고, 그 자유로움이 그에게는 최고의 기쁨이었다. 또한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이방인이 아닌 존재로 타지에서 인정받으며, 자존감 형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국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모교인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해 자부심을 알아갔고, 서울의대에 입학 후 그는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인 아내를 만났다. 연애하는 2년 동안 3일을 빼고 만났을 정도로 열렬히 사랑했던 아내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 어쩌면 그의 기분 전환 방법 중 하나가 가족과의 대화인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해 꾸준히 삶을 살아가자

“서울의대에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꾸준히 열심히 살아야 올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공부도 벼락치기를 할 수 있지만, 기본이 없으면 힘들어요. 그러니까 언제나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홍균 교수는 전환점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꾸준히 최선을 다하는 삶과 함께 순응하는 태도를 이야기했다. 일어나는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노력할 수 있고,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 말이다. 또한 전환점에 큰 의미를 두고 싶지 않다고 한다. 전환점이라는 것에 너무 큰 의미를 두고 그것만 바라보면 오히려 그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순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상투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범사에 최선을 다하고 다가오는 순간들의 의미를 발견하며,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살아온 시간을 돌아봤을 때, 삶에 무의미한 시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꿈은 정년 후 아내와 함께 함박스테이크와 양송이 수프를 파는 작은 식당을 여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 생긴 꿈은 지금 운영하고 있는 파프리카랩을 더욱 크게 키워나가는 것. ‘For the peace of all mankind’라는 회사의 모토처럼 방사선치료를 받는 환자들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해주는 것이다. 앞으로 그가 내디딜 또 다른 한 계단이 기대된다.

채종희 교수 소아과학교실

우연한 기회가 열어준 새로운 세계

서울의대 소아과학교실 채종희 교수는 희귀·희소 질환을 다루고 있다. 최근에는 초고가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인 ‘졸겐스마’를 국내에 도입해 환자들에게 투여하는 등 좋은 소식을 알렸다. 그녀의 첫 환자도 ‘척수성근위축증’이었다. 30년 전에는 진단을 위해 어려운 조직검사를 해야 했고, 조직검사를 위해 수면 마취를 했던 아이는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때의 아픔이 ‘어려운 병을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뀌어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일본에서 연수할 기회를 가질 때 깨달았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새로운 세계를 만난 거죠. 우리나라에서는 들은 적도 없는 수많은 새로운 질환을 연구하고 있었고, 사람들의 관심이 없는 분야인데도 연구가 굉장히 활발했어요. 그때의 선진의학인 셈이죠.”

일본에서의 시간이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곳에서의 새로운 시작이 두려웠지만 동료 연구원의 도움과 일본 스승님의 가르침이 큰 힘이 되어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환자를 돌보며 연구를 지속했다.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스승님과 많은 동료, 후배들이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연구하고 논문을 썼다. 하지만 치료제 없이 나빠져 가는 환자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음에 좌절했다. 우울감이 밀려왔다.

“일 년에 한두 번씩 오던 10대의 근육병을 앓은 친구가 있는데, 어느 날 어머님만 오셨어요.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시간이 좀 지나서 찾아왔다면서 ‘다른 병원에서는 포기했는데, 선생님이 만날 때마다 이거 해보자, 저거 해보자 해준 덕분에 내가 아들을 위해 최고의 병원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해 주시더라고요.”

그녀는 환자와 부모님을 대하며 절망스럽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이분들도 나중에 그렇게 생각해주실 거라며 힘을 얻는다. 그래서 늘 활기차게 환자를 대하고 연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스스로에게 관대한 사람이 되자

채종희 교수의 인생 모토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이다. 변화가 생기거나 새로운 일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순간이 곧 그녀에게는 전환점이 된다. 그리고 너무 멀리 말고 하루별로 계획을 세우고, 계획의 90%를 해내면 ‘오늘 내가 정말 잘했구나’ 하는 칭찬을 잊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관대해야 해요. 흔히 나에게 관대하면 남에게 관대하지 못 하다고 하는데, 저는 스스로에게 관대한 사람이 남에게도 관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여유가 생기거든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늘 ‘괜찮다, 잘했다’라고 칭찬해 주는 거죠.”

평소에 호기심이 많은 그녀는 우울해질 틈이 없다. 금세 다른 것이 궁금해져 관심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그녀는 먹는 것을 좋아하고 요리도 즐긴다. 요리는 망쳐도 살려낼 방법도 있고 재료를 키우는 일 같이 기초부터 시작하지 않아도 근사한 요리를 만들 수 있다. 즉, 요리에는 성공 포인트가 많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모든 어려운 병을 극복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모두의 머리와 경험을 모아야겠죠. 흔히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라고 하죠. 하지만 어깨는 너무 거창하고 저는 거인의 어깨 위에 조금 더 얹혀진 어깨 패드 정도 역할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채종희 교수는 후배들, 그리고 제자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징검다리, 혹은 디딤돌이 되어주고자 한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여러 희귀 질환 관련 연구들은 꾸준한 인내와 노력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녀는 후배를 위한 기반을 만들고 그 기반 위에 후배 의사, 과학자들이 큰 열매를 맺기를, 덕분에 많은 희소 질환 어린이들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날들을 기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