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발전하는 의학 속에서 주목받는 메타버스

우리가 어릴 적 상상하던 미래에서 빠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건강하고 좋은 유전자를 타고나는 사람들, 매일 나의 건강을 관리하는 인공지능, 만능에 가까운 약물이나 수술 등 의학에 관한 것들이다. 하지만 상상 속 미래 의학은 어느새 우리의 일상에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흔히 미래 의학을 ‘4P 의학’이라 말한다. 개인의 특성에 맞춰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개인맞춤(personalized)의학과 유전자 정보나 생활 습관 등에 대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질병의 발생을 예측하여 대응하는 예측(premptive)의학, 유전자 교정이나 각종 기능의 보강을 통해 건강을 최대한 증진시키는 예방(preventive)의학과 환자가 자신의 질병 치료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참여(participatory)의학 등 미래 의학의 특징을 설명하는 영어의 앞 글자에서 따온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이후 다양한 최신 기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19로 헬스 케어 분야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AI, 3D프린팅, AR, VR 등 새로운 기술들이 의학 교육, 원격 의료, 의료 시스템 자동화 등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매개체로써 주목받고 있다. 이중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메타버스’는 의학과 의료 전반에 접목돼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기대감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가능성과 형태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의료 메타버스란 무엇인가?

메타버스란 초월, 가상을 의미하는 ‘meta’와 세계를 의미하는 ‘universe’의 합성어로, 1992년 출간된 소설 <스노 크래시> 속 가상 세계 명칭인 ‘메타버스’에서 유래했다. 쉽게 말해 현실을 디지털 세상으로 확장시키는 것으로 가상 세계 속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메타버스’라고 하면 흔히 가상공간에서 활동하는 아바타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는 ‘의료 메타버스’를 이해하기에는 좁은 개념이다.

“의료 메타버스는 기존의 메타버스보다 해석을 조금 넓게 가져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바타가 꼭 필요하지 않고 새로운 시공간 레이어에서 의료 데이터나 의료 기술, 진료 또는 의학과 관련된 교육 행위 등이 다른 사람들과 쌍방향으로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그 자체를 의료 메타버스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1월 의료메타버스연구회가 서울의대 박철기 교수를 초대 회장으로 출범했다. 국내 첫 의료 메타버스 연구 단체로 주목을 받으며, 창립 6개월 만에 300명 넘는 회원이 참여해 학술 교류와 정책 자문 역할을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의료메타버스학회를 창립했다. 메타버스에 대한 뜨거운 관심에도 불구하고 아직 구체적인 역할과 필요성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의료메타버스학회는 그에 대한 답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의학 교육 분야에서는 메타버스를 활용하고 있다. 해부학 실습을 대체할 수 있는 확장현실(XR) 의학 교육이 이뤄지고 있으며, 향후 메타버스를 통해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같은 자료를 놓고 소통하는 메타버스 의학 교육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해외의 경우 환자나 보호자 교육이나 재활 치료에도 사용되고 있다. 게임과 같은 재미있는 가상공간을 통해 운동의 효율을 높이고 동기를 유발함으로써 통증은 줄이고 재활의 효과는 극대화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는 수술장 안에서 콘솔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로봇수술도 원격 수술을 지나 2~3명의 수술자가 동시에 접속해 소통하며 수술하는 메타버스 수술로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외래 진료나 협진, 검사도 메타버스 공간에서 다양한 진료과 의사와 환자, 보호자가 모이는 ‘메타버스 진료’로 구현될 수 있다.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 공황장애, 치매, 중독, 수면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에도 메타버스 기술이 더해지면 환자 개개인에게 알맞은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고 몰입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

의료 메타버스의 완성으로 가는 길

“의료 메타버스는 그 자체가 데이터 혁신으로 현재의 의료전달체계와는 다른 새로운 의료질서가 도래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미래 메타버스 의료를 구현하려면 여러 기반 기술이 발전해야 하며 환자에 대한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메디컬 체어’나 ‘메디컬 박스’ 같은 특화 디바이스도 개발돼야 할 것입니다.”

박철기 교수는 의료 메타버스가 본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아직까지는 기술적 발전이 더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적잖다. 진료,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구현과 활용이 가능한 만큼 법이나 제도적 뒷받침이 따라 줘야 한다. 현재는 메타버스 관련 법제도가 아예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는 이 질서를 누가,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를 앞으로의 싸움으로 보고 있다. 또한 ‘가상 세계’ 특성상 의료 분야에서는 다양한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공산이 크기 때문에 더욱 신경써야 한다.

“자동차를 잘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선도할 수 있는가. 즉, 교통 시스템을 누가, 어떻게 더 잘 만드는가의 싸움일 것 같아요.”

의료메타버스학회는 메타버스와 관련된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요한 것을 잘 적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개인이 완성할 수 없는 만큼, 학회를 통해 의견을 나누고 논의를 통해 통일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학회의 중요한 역할일 것이다.

“미래의 병원은 한산한 병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직접적인 검체가 필요하거나 특수한 장비가 필요한 경우가 아닌 특히 인지기능검사 같은 것들은 집에서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원격 진료가 이뤄지면 환자와 의사 모두 병원으로 올 필요가 없는 것이죠.”

박철기 교수는 의료 메타버스의 확장으로 완성되는 미래의 병원은 한산할 것으로 예상했다. 개인적으로 집에서 검사가 이뤄지거나 이동형 장비를 통해 가벼운 검체 채취가 이뤄질 수 있으며, 그 결과에 따라 진단하고 진료를 받는 것이 꼭 병원에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공간적으로나 인력적으로 많은 여유가 생길 것이고, 그런 식으로 메타버스 병원의 원형이 만들어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료 메타버스’의 등장에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정의를 묻는다. 하지만 박철기 교수는 “처음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전화기냐? 사진기냐? 물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며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의미가 정립되고 정의될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의 정의는 무의미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지금처럼 일방향이 아니라 양방향으로 서로 소통할 때 진정한 의료 메타버스가 완성될 것이라고 말한다.

“메타버스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지금은 메타버스를 이용한 미래 의학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들은 0.01%도 안 되겠지만, 점점 적용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전통적인 의료와 함께 조금씩 범위가 늘어날 거예요. 갑자기 메타버스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일상을 파고드는 거죠.”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그 기술을 너무 탐닉하게 되면 목적이 되어버린다. 굳이 적용하지 않아도 될 분야에 적용하다 보면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기술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유용하게 쓰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박철기 교수는 현재 의학을 공부하고 있는 후속 세대에게 그러한 마음가짐,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누군가 길을 만들면 다른 사람들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길을 잘 닦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메타버스를 의학 교육 분야에 처음 도입했던 것처럼 서울의대가 이런 것들을 공식화하고 개발 인력도 양성하며, 기술 개발 등 연구도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선도적으로 길을 개척하는 만큼 이 방향이 올바른 방향인지 심사숙고해서 판단하는 것이 서울의대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 많은 인터뷰를 통해 메타버스 전도사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런 것은 아니고요. 저의 본연의 분야, 뇌종양 쪽으로 앞서 말씀드린 메타버스 정의와 맞는 결과물이나 시스템을 하나라도 만들어서 실제로 의료 현장이나 적용하고 싶습니다.”

박철기 교수는 의료 메타버스를 이야기하며 끊임없이 ‘소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정한 메타버스의 의미가 서로 소통하는 양방향에 있기도 하지만, 메타버스 자체가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앞으로 정립되어 갈 ‘의료 메타버스’의 미래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