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

실비아는 사용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데이터를 기반으로 치매 조기 진단과 예방에 도움을 주는 인지 건강 관리 플랫폼이다. 고명진 대표가 지금의 실비아헬스를 이뤄내기까지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마치 그가 ‘전환의 산증인’처럼 느껴진다. 수학과에서 경제학도로, 의대생에서 스타트업 창업가로 변화한 남다른 이력을 가진 덕이다.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던 고명진 대표는 식음도 전폐하며 수학에 매진하는 친구들을 보며 처음으로 ‘나는 수학보다는 밥이구나, 그럼 나는 무엇을 하고 싶나’라는 고민에 빠졌다. 이후 사회 문제를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사회경제학에 매력을 느껴 경제학을 공부하던 그녀는 ‘인생의 가장 큰 터닝 포인트’를 맞이한다. 한국에서 미국까지 14시간 비행도 끄떡없을 만큼 정정하셨던 할머니께서 갑자기 쓰러지신 것이다. 어릴 때부터 조부모님의 손에서 자란 그녀에게 이 일은 삶의 궤적을 바꿀 정도로 큰 사건이었고, 한국으로 귀국해 1년 동안 할머니를 간호하며 서울의대에 진학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의대에 진학한 이후에도 고명진 대표는 다양한 아르바이트와 봉사활동을 이어가며 ‘내가 매진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복지관에서 저소득층 아이들의 수학 공부를 돌봐주기도 하고,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환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독거 어르신들을 찾아가는 방문 진료 봉사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모두 별개의 활동처럼 보였지만, 결국 이 모든 활동은 한 가지의 뜻을 관통하고 있었다. 간절한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일, 그들에게 변화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일을 한다면 굉장히 보람 있겠다는 것. 고명진 대표는 그런 경험과 소소한 성공을 통해 ‘실비아헬스’라는 비대면 케어 서비스의 아이디어를 얻게 됐다. 학업으로 봉사활동이 힘들어지는 의대생과 어르신들을 위한 ‘비대면 봉사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당시 여러 기관에 비대면 봉사 프로그램을 건의했지만 허락한 곳은 단 하나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어르신들 대상의 비대면 건강 관리가 가능하다는 걸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실비아헬스로 치매, 조기에 발견하세요!

2020년 시드 투자 유치 이후, 올해 1월 정식 서비스를 오픈한 실비아헬스. 최근에는 다수의 투자사들로부터 Pre-A 단계 투자 유치를 완료하며 그 가능성을 또 한 번 입증했고, 정부 주도의 비의료 건강관리 시범사업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런데 고명진 대표가 많은 질환 중에서도 ‘치매’와 관련된 헬스 케어 플랫폼을 구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할머니를 간호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당시 할머니께서 치매를 걱정하셔서 약을 드시고 계셨더라고요. 치매는 아니셨지만, 치매 전 단계인 ‘경도 인지 장애’ 수준이셨던 것 같아요. 경도 인지 장애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표준 치료가 존재하지 않아요. 병원에서도 경도 인지 장애라고 하면 팸플릿 정도만 나눠주곤 ‘관리 잘 하시라’고 조언하는 것밖에 별 수가 없죠. 그래서 그만큼 관리가 쉽지 않은 게 경도 인지 장애예요.”

우리는 흔히 ‘치매’라고 하면 아주 극한의 상황을 떠올린다. 방금 일어났던 일이나 말도 기억하지 못하고, 감정 표현에 서툴러지거나 신체 기능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태는 치매가 중증 이상으로 접어들어야 나타나는 현상으로, 치매 전 단계인 경도 인지 장애 상태에서는 관리만 잘 하면 중증으로 진행되는 속도를 현저히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치매란 조기 발견과 예방이 매우 중요한 질환이기에, 고명진 대표는 경도 인지 장애를 스스로 점검해보거나 예방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다.

“제가 창업을 한다고 하니 친구들은 놀랐고 조부모님은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험난한 사업에 뛰어든다니 당연히 걱정이 많이 되셨을 거예요. 제가 계속 ‘이런 기술을 만들 거다’라고 설명하기도 했고, 할머니께서 특히 치매에 대한 고민이 많으셔서 제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해주셨죠. 지금은 저의 가장 까다로운 고객이자 든든한 지원군이세요.”

이용자와 의료진, 모두가 인정하는 서비스를 향해

실비아헬스는 치매 전 단계인 경도 인지 장애 상태의 환자 분들이나 ‘주관적 인지 저하’ 상태인 중장년, 노년층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다. 주관적 인지 저하란 건망증 때문에 불안감이나 불편감이 지속되지만, 검사를 진행해보면 정상으로 나오는 상태를 뜻한다. 이런 분들이 치매를 조기 발견하거나 예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플랫폼인 실비아헬스의 주요 기능은 크게 ‘평가’와 ‘관리’로 구성된다. 오프라인의 건강 관리 서비스를 완전한 온라인으로 대체하자는 것이 아닌, 오프라인 인프라와 함께 활용되어 시너지를 내자는 것이 실비아헬스가 추구하는 역할이다.

“코로나 자가 진단 키트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경우 치매 증상 발현 후 병원에 가기까지 약 3년이 걸린다고 할 정도로 치매 치료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면 받을 수 있는 수혜가 의학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너무나 명확한데, 이 점을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게 참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경도 인지 장애에 대한 정보들을 알려주고, 혹시 문제가 있으면 병원에서 진단을 받을 수 있게끔 안내를 도와주는 플랫폼이 되고 싶어요.”

실비아헬스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서비스, 일명 ‘휴먼 터치’를 위해 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전문가들을 코치진으로 모시고 있다. 또한 주기적으로 이용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기존의 일방향적인 치매 진단이나 교육을 제공하기보다는,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 간의 쌍방향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콘텐츠 자체도 이용자 각각의 취향을 반영하여 예방과 학습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의료진들에게도 실비아헬스의 과학성을 납득시키고 병원에 내원한 이용자들의 데이터가 객관적인 지표로 사용될 수 있도록 진단 과정과 성과를 입증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용자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한 것을 최우선해야 한다는 것. 이때문에 계속해서 사용성 보완 작업 또한 진행하고 있다.

실비아 서비스 화면

사람과 함께하는 일, 일상에서 만드는 작은 전환점

고명진 대표가 실비아헬스를 지금의 궤도까지 올려놓는 데 가장 집중했던 것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장 어려웠던 것도 사람이었다. 사람을 돕는 것을 좋아하고, 궂은일을 맡아하던 그녀는 직원들에게 일을 ‘위임’하는 것조차 몰랐다고 과거를 복기한다. 지금은 시스템의 중요성을 깨닫고 적재적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업무를 위임하고 본인은 대표로서 해야 하는 일을 찾아 집중하고 있다.

“지금은 의사결정을 제가 하지 않아요. 실무진들에게 맡기니 오히려 더 효율적이고 조직이 더 원활하게 돌아가더라고요. 옛날엔 멋지고 번드르르한 아이디어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조직의 시스템과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만들어가는 우리 팀, 바로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고명진 대표 본인은 스스로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은 정말 우연한 기회에 ‘실비아헬스’를 만들어 이어나가고 있지만, 어쩌면 자신은 늘 본인이 갖고 있던 생각의 일관성을 따라 왔을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에게 의사 혹은 의사과학자라는 멋진 길을 두고 다른 길을 꿈꾸라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다면 막연한 아이디어에 집착하기보다 사업에 대해 철저히 공부할 것을 권했다. 더없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나만의 아이디어는 사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거나 혹은 이미 생각했던 것들이라고, 그러나 그것을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어 나가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고 말한다. 또한 혼자 하는 일이 아니기에 사람들과 하는 일에 대한,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이밖에도 그녀는 일상 속에서 작은 전환점을 찾으라고 말한다. 꾸준히 봉사를 하거나 호기심이 생기는 분야의 책을 읽는 등 일상 속에서 좋아하는 일들을 하다 보면, 언젠가 그 일에 확신이 드는 순간이 있다는 것. 그런 과정을 거쳐 자신이 준비가 되었다면, 비로소 그때 다른 길로 뛰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위기가 있었는데, 그런 위기들을 겪다 보니 저 자신이나 세상에 대한 구체화가 되더라고요. 마치 돌을 깎아나가는 것처럼요. 내가 사람들과, 또 사회와 상호작용하면서 어떤 점이 부족하고, 어떤 점을 채워야 할지 구체화되니까 저에게는 사실상 위기가 더 큰 자산이 되었던 것 같아요.”

고명진 대표의 최종적인 꿈은 직원들과 함께 ‘우리가 꿈꾸는 장면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람들이 ‘경도 인지 장애’라는 단어를 친숙하게 사용하고, 경도 인지 장애 환자와 보호자들이 실비아를 의사에게 직접 추천하기도 하는 장면 말이다. 그 꿈과 목표가 너무나도 명확하고 뚜렷해서 어떠한 도전과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한다. 그녀에게 ‘의대생이 창업가가 됐다’는 것은 작은 전환에 불과하다. 진짜 대전환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는 것’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일생에서 한번쯤 전환의 순간을 맞이한다. 전환을 눈앞에 두고 주저하기보다는, 자신만이 가진 가치관의 일관성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믿고 나아가는 그녀처럼 인생 속 전환을 맞이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