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체성 혼란의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거울을 보듯,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나를 확인하는 것으로 자존감을 유지한다. 하지만 급격한 시대 변화의 흐름 속에서 피상적이고 분절된 소셜 미디어의 대인 관계가 친밀한 연결을 대체했다. 언어와 문화, 직업조차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사라지고,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일어나는 지식과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학습과 도전, 삶의 방향 전환을 끝도 없이 요구한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위치하는가, 나의 역량과 한계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등 많은 사람이 불안정한 사회에 고립되어 삶의 주요 장면에서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나의 판단이 맞는지에 대한 불안을 감내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나’를 지각함으로써 불확실성 속에서 혼란보다 내적 확신으로, 보다 유연하게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나를 지키는 힘, 자기복잡성(self-complexity)

자기복잡성이란 사회적 역할과 위치, 타인과의 관계, 나에 대한 다양한 관념들과 활동, 목표 등 자기의 여러 측면을 다양하고 분별력 있게 인식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이자 연구자, 그리고 교육자이다. 누군가의 자녀, 부모, 친구이며 등산과 음악을 즐기는 사람, 꿈꾸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렇듯 자기의 다양한 측면이 서로 구분되면서도 중첩되는 역동적인 ‘나’라는 개념들에 대한 인식이 바로 자기복잡성이다.

자기복잡성에 대한 명확한 자각은 스트레스를 견디고 새로운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내적인 힘의 밑바탕이 된다. 나를 한 단어, 한 줄로만 설명한다면 그 정체성이 삶에서 상실되거나 실패했을 때 혹은 삶의 전환기에 들어섰을 때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각이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

서울대학교 정신건강센터에는 이러한 자기복잡성이 결여된 무수히 많은 학생들이 찾아온다. ‘남들보다 공부 잘하는 나, 언제나 칭찬받는 나’로만 살아온 학생들은 대학에 입학한 후, 무수한 선택지와 나보다 뛰어난, 게다가 나에게 관심도 없는 타인 앞에서 무력감과 분노를 느낀다. 완전한 ‘번아웃’ 상태로 입학한 신입생들은 쉬고 싶어도 쉴 수 있는 자원도, 방법도 모른다. ‘공부 잘하는 자녀’ 역할 이외의 다른 역할은 너무 어색하기만 하고, 자신만의 가치 있는 목표나 기준을 생각하는 것이 낯설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데 왜 하는지 정확히 모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성공적인 삶에 대한 부모와 사회의 자기중심적 조언을 절대 법칙처럼 여기며 적어도 남들보다 뒤지지 않는 것만을 목표로 하며 삶이 떠밀리듯 흘러갈 때, 겉보기에 그럴듯한 ‘나’가 왠지 ‘진짜 나’가 아닌 것 같다는 모호한 불안감이 커져만 간다.

‘명예와 권위를 인정받는 교수’로만 살아온 나는 대부분의 워커홀릭(workaholic)이 그렇듯 그 역할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가해졌을 때 깊은 우울과 불안에 빠지거나 혼란과 분노에 휩싸인다. 은퇴나 실직은 ‘나’의 심리적 사망이 된다. 과거에 옳았던 혹은 유일했던 정체성은 더 이상 현실에 적응적이지 않으며 나에게 ‘자기’에 대한 좋은 느낌을 주지도 않는다. 나는 내가 불편해지고, 자꾸 변해가는 세상과 새로운 역할이 두려워지며, 어쩌면 ‘진짜 나’라는 존재는 무의미할지도 모른다는 실존적 불안에 시달린다.

‘나’라는 퍼즐은 몇 개의 조각으로 되어 있을까?

‘나’라는 퍼즐은 틀에 단번에 끼워 맞출 수 있는 한 두 조각 짜리 퍼즐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나만의 고유한 그림을 완성하는 여러 개의 퍼즐 조각으로 이뤄져야 한다. 퍼즐 조각이 한 두 개쯤 사라져도 ‘나’라는 그림 전체는 무너지지 않는다. 한 조각에서 실망과 좌절을 겪어도 나에게는 즐거움과 에너지를 고양시켜 줄 다른 퍼즐 조각이 있다. 하나의 역할이 현실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때, 다른 역할로의 이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유지할 수 있다.

복잡하고 정교한 퍼즐을 가진 사람일수록 환경이나 역할의 변화 요구가 있을 때 퍼즐 판을 뒤엎지 않고도 부분적인 수정과 창조적인 작업을 통해 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내가 퍼즐 조각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여러 측면에서 맞춰보고 흥미롭게 창조적인 작업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런 사람은 인생의 격변기에 스스로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자각하면서 혼란보다 호기심을, 두려움보다 즐거운 흥분을 느끼며 나아갈 수 있다. 물론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완전히 분열된 행동을 하거나 카멜레온처럼 시간적으로 분절된 변화무쌍한 모습으로만 자신을 지각하는 것은 오히려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나도 어떤 내가 진짜인가 헷갈리면 안 된다. 정교하게 구분된 복잡한 자기 측면들을 통합하여 ‘나’라는 하나의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누구나 아는 실존적 질문으로 나의 고유한 그림을 인식해 가는 작은 실험을 해보자.

당신은 의사로서 새로운 직장에 첫 출근을 했다. 여러 직원 중 한 명이 “누구입니까?”라고 묻는다. “저는 오늘부터 여기서 의사로 근무하게 된 ○○○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상대방은 갸우뚱하면서 다시 묻는다. “그래서 당신은 누구라는 것입니까?” 조금 당황스럽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저는 여기서 ○○○과 과장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업무와 직책, 졸업한 학교와 수련병원,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까지 설명한다. 그러다 그는 다시 묻는다. “그런 당신은 누구입니까?” 계속되는 질문에 당신은 이제 그가 단순히 나의 역할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상대방은 여전히 당신을 응시하고 혼란에 빠진다. 성격, 취미, 장단점과 가족 관계 등 더 사적인 정보를 나열해 보지만 상대방은 또 묻는다. “그것이 바로 당신입니까?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당신은 할 말을 잃는다. 떠오르는 모든 개인적인 정보를 나열한다고 한들 이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마침내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우리는 질문이 반복될수록 말로 설명하고 표현할 수 있는 정보의 총합만으로는 ‘그것이 결국 나인지’에 대한 답으로 무엇인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표면적이고 사실적인 나에 대한 여러 퍼즐 조각을 이리저리 맞추어도 남들과 구별되는 나만의 주제를 표현하는 그림으로 완성하기 쉽지 않다. 같은 종류와 숫자의 블록들로 얼마든지 다른 형상을 만들어 낼 수 있듯이 우리는 그 특성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언제나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거나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실존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한다는 것은 나에 대한 단순한 정보들의 나열이 아닌 그 정보를 일관되게 엮어줄 수 있는 방향성과 주제가 있는 틀(frame), 즉 내가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판단하는 틀을 명료하게 인식하는 과정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삶에서 여러 사건이 일어나고 선택이 요청되는 순간에 나를 이끄는 방향성에 대한 질문이다. 바로 무엇이 내 삶에 의미 있고 더 중요한지, 더 가치 있는지,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행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각이다. 10년 전, 20년 전의 내가 지금과 표면적으로 여러모로 다른데도 여전히 동일인인가를 설명해 주는 서사적 정체성은 바로 내가 중요시하는 가치와 방향성에 대한 자각 없이는 불가능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질문부터, 내가 여기서 왜 고생하고 있는지, 이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나는 도대체 무엇을 누리겠다고 돈을 벌고 있는지, 인간관계가 다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유행하는 것이 바뀔 텐데 지금 내가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등의 한숨 섞인 질문들이 불분명한 정체성이 드러나는 방식이다.

현대사회는 신경증의 시대라고 한다. 점점 많은 이들이 다양한 정도의 불안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을 찾아온다. 이들은 오늘의 행동이 내일의 확실한 결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해야 할 일이, 미래가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무엇을 하면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지 정답을 궁금해한다. 그러나 삶은 때로 숨 막힐 정도로 부조리하고 불안정하고 예측불가능하지 않은가. 정해진 것도 없고 정답도 없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내가 매 순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뿐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명확하다는 것은 삶에서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에 비교적 명확한 가치 판단 기준과 목적을 가지고 큰 두려움 없이 선택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김은영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휴먼시스템의학과 소속 교수로 연구와 교육에 매진하고 있으며
동시에 보건진료소 정신건강센터장의 업무를 맡아 캠퍼스 정신건강증진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공저 <그대의 마음에 닿았습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