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학기 첫날 나나는 반 아이들 앞에 섰다.
“르네, 손, 나나 앞으로 오렴.”
나나를 불러 세운 선생님은 르네, 손과 함께 나나를 특별한 아이라고 소개했다. 교실에서 ‘특별한 아이’라는 표현은 대개 인공지능을 탑재한 휴머노이드란 의미였다. 선생님이 말했다.
“오늘 전학 온 특별한 아이들은 관절이 아직 덜 발달해서 우리와 함께 체육 활동을 하긴 어려워. 하지만 수학이나 어학에 특별한 능력을 보이니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단다.”
쉬는 시간에 나나는 같은 반 열 살 아이들에게 둘러싸였다. 아이들은 나나를 호기심 어린 얼굴로 보았다.
“볼을 꼬집어봐도 돼?”
나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 누군가 나나의 손등을 연필로 꾹 눌렀다. 나나는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돌아보니 콧물 자국이 있는 사내아이가 놀리는 게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헤헤, 우리랑 피부가 똑같네.”
나나는 그 아이를 흘겨보다 이내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 좀 풀어볼래?”
옆에 있던 여자아이가 수학책을 내밀었다. 나나는 그것을 눈으로 3초 만에 풀었다.
“3.”
아이들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바보들! 나나는 혼잣말을 했다. 나나와 함께 특별한 아이인 손은 아이들 부탁에 어쩔 수 없이 재킷을 벗어서 복잡한 회로 가득한 몸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나나를 둘러쌌던 아이들이 우르르 손에게 몰려갔다. 그중 한 아이가 나나를 보며 소리쳤다.
“나나, 너도 이런 거 보여줘.”
아이들이 다시 나나에게 뛰어왔다. 구경거리를 기대하는 눈빛들. 나나는 매번 하던 대로 고개를 저었다.
“내 몸은 개폐식이 아니야.”
아이들이 실망한 표정을 지어서 나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순간.
“그럼 뭘 보여줄 거야? 휴머노이드! 우리에게 도움이 되어야 할 거 아니야?”
볼 빨간 여자아이가 소리쳤다. 그러자.
“야, 그러지 마. 인간처럼 대해줘.”
체크무늬 반 바지를 입은 남자아이가 말했다. 어느새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여자아이가 나나 옆에 다가와 등을 토닥이며 나나를 위로하는 시늉을 했다. 나나는 아이들 사이에서 어색하게 웃었다. 인권 교육과 함께 로봇권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 대부분은 로봇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치 태어날 때부터 악이었던 것처럼 악의 본성이 툭툭 튀어나오는 아이도 더러 있었다. 나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본성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적절한 시점에 놀라게 해줄 무언가를 내놓아야 했다.
나나는 아이들을 향해 마치 유치원 선생님이 된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
“내 안엔 5개 국어가 프로그램 되어 있어. 프랑스어로 인사를 해줄까? 봉주르? 즈마뻴나나. 젬므시양스, 제디장스. 꼬망부자쁠레부? ”
그러자 나나처럼 특별한 아이인 르네가 곁에 다가오더니,
“안녕? 내 이름은 나나야. 나는 과학을 좋아하고, 열 살이야. 네 이름은 뭐야?” 하고 나나가 말하는 프랑스어를 즉시 통역해 주었다. 아이들은 나나와 르네의 자동 통역기 같은 콤비 플레이에 와, 와, 하고 소리쳤다. 5분이 지났을 때 나나는 이제 그만하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쇼가 끝난 것을 아쉬워하며 제 자리에 앉았다. 나나는 그제야 나지막이 한숨을 쉬고는 옆에 르네에게 말했다.
“넌 정말 특별한 아이구나.”
정규 수업이 끝나고 오후 체육 활동 시간이 되자 다른 특별한 아이인 르네와 손은 보호자가 데려갔다. 나나는 선생님에게 구경하고 싶다고 말했다. 벤치에 혼자 앉아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다. 나나의 머릿속은 바쁘게 움직였다. 나나는 골이 가까이 다가올 때는 수비수가 되었다가, 골키퍼가 되었다가, 하프라인을 넘어가자 미드필더가 되었다가 공격수가 되며 포지션을 바꿔갔다. 모두가 상상이지만 나나는 뛰는 선수 못지 않게 흥분했다. 나나의 짝이 골을 몰고 갈 때 나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성이 들렸다. 골을 넣은 것이다. 나나는 박수를 치며 소리쳤다. 나나의 심장은 벌렁거렸다. 나나도 뛸 수 있었다. 다만 숨이 찬 게 문제였다.
“왜 함께 놀지 않니?”
나나가 고개를 돌리자 휠체어에 탄 남자가 다가와 있었다. 나나보다 열다섯 살은 더 많아 보이는 어른이었다. 나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기만 했다. 그러다 휠체어가 눈에 들어왔다.
“앉고 있는 그 의자는 무언가요?”
나나가 물었다.
“아, 이거? 휠체어란다.”
“휠체어? 처음 봐요, 그런데 왜 앉아 있어요?”
“왜냐고? 나는 다리가 아프니까.”
나나는 일어나 휠체어를 향해 다가오더니 그것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유심히 살폈다.

“휠체어 팔걸이와 바퀴에 꽃 같은 걸 그렸네요.”
“예뻐 보이라고 그렸어. 이게 내 다리니까.”
“다리라고요?”
“난 다리에 장애가 있으니까 휠체어가 내 제2의 몸이야.”
누군가 또 골을 넣어서 운동장에서 함성이 들렸다. 나나는 골대 부근 아이들을 한 번 바라본 후 다시 남자의 휠체어를 보았다. 나나가 말했다.
“요즘 나오는 인공 다리로 바꾸면 감쪽같을 텐데요.”
“나는 기계의 이물감이 싫어. 내 몸에 자연스럽게 붙지 않는 느낌이라서. 휠체어가 편해.”
“하지만 티가 나잖아요.”
남자는 여유롭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이게 나인 걸.”
나나는 남자의 휠체어와 그의 환한 미소를 번갈아 보았다. 나나는 휠체어를 처음 보았다. 당연히 휠체어를 탄 사람도 처음 보았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는 나나에요, 특별한 아이. 그런데 특별한 아이가 아니기도 해요. 이게 나에요. 나는 어때 보여요?”
“너는 그냥 평범한 아이 같은데?”
남자가 자신의 휠체어를 조금 뒤로 밀어서 나나를 다시 살피는 것 같았다. 그때 나나와 남자가 있는 곳으로 축구공이 날아들었다. 아이들이 조심해!, 하고 소리쳤다. 나나가 고개를 돌렸을 때 눈앞에 공이 날아오고 있었다. 나나는 어어, 하고 뒷걸음질쳤다. 그때 남자의 휠체어가 바로 뒤에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나는 공을 피할 시간이 없는 것 같아 두 팔을 교차하여 X자로 만들어 공을 받았다. 공은 나나의 팔과 얼굴 사이에 떨어졌다. 공을 받느라 나나는 휠체어 바로 앞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괜찮아?” 남자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나나는 비틀비틀 일어나면서 뒤돌아 남자가 괜찮은지 살폈다. 나나는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괜찮다고 말했다. 말하는 나나의 숨이 가빴다. 남자가 나나를 보며 빙긋이 웃었다.
“너는 특별한 아이가 맞구나.”
“네?”
“내가 맞지 않도록 막아줬잖아. 네 마음이 특별한 거야.”
나나는 대답 없이 입을 삐쭉이기만 했다. 다시 아이들 축구 경기를 보다가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있잖아요.” 나나는 몸을 비틀어 대며 말했다. “아저씨 다리는 근사해요.”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나나를 반겼다.
“나나, 새 학교는 어땠어?”
나나는 좋았어, 하고 말하며 계단을 올라 2층 방으로 향했다. 엄마가 뒤따라왔다.
“아이들은 너를 특별한 아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나나는 대답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오른 직후라 조금 가쁘게 숨을 쉬었다. 엄마는 나나를 따라 방까지 들어왔다.
“외국어와 수학을 더 열심히 해야 해. 너처럼 머리 좋고, 똑똑한 애는 네 또래 중에는 없으니까 아무도 네 정체성을 의심하진 않을 거야.”
나나는 침대에 책가방을 던졌다. 헐떡이는 심장을 느끼며 가슴에 손을 올렸다. 문득 생각난 것처럼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는 왜 특별한 아이야?”
“너는 휴머노이드처럼 똑똑하니까.”
나나는 그 말에 침대에 털썩 누우며 호흡을 골랐다. 무언가를 생각하던 나나가 고개를 엄마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아이들에게 내 심장이 아프다고 말하면 안 돼? 내가 심장이 아픈 걸 몰라서 아이들이 나를 특별한 아이, 휴머노이드로 대해. 나는 아이들과 친해지기 어려워.”
“그걸 알리면 아이들이 너를 무시할 거야. 엄마는 평생 약한 심장 때문에 같은 반 친구들에게 무시당하며 자라왔단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낸 거야. 이번 학기엔 프랑스어까지 하니까 반응이 좋지?”
“이번에도 얼마 못 가 그 특별함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거야. 나보다 똑똑한 아이가 나타나면 나는 별 볼 일 없는 휴머노이드 취급받고 무시당할 거라고. 지난 학교에서도 영어, 스페인어가 처음에만 특별했잖아. 오늘도 휴머노이드 르네가 나보다 훨씬 똑똑했어.”
“그렇게 될까 봐 방학 동안 공부를 더 열심히 했잖니.” 엄마가 잠시 뜸 들이다 말했다. “어쨌든 좋은 소식이 있어!”
엄마가 나나의 볼을 꼬집으며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말했다.
“수술 날짜가 잡혔어. 석 달 뒤에 수술만 받으면 네 심장은 완벽한 성능의 기계로 바뀔 거야. 부작용 있는 오거노이드 심장이 아니라. 그때 또 다른 학교로 전학 가자. 거기서 완벽한 기계 인간으로 살면 돼. 이제 너는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단다.”
“그럼, 그때 난 더 이상 특별한 아이가 안 되는 거야?”
아직도 숨이 찬 듯 나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엄마가 다가와 나나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너는 특별한 아이가 아니라 완전한 아이가 되는 거지. 모든 면에서 월등한 아이.”
“엄마!”
그러자 나나가 상체를 일으켰다. 침대 매트리스 위에 섰다. 엄마가 그런 나나를 의아하게 보았다.
“너 왜 그래? 침대 위에 왜 올라선 거야?”
나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매트리스 위를 펄쩍 뛰었다. 엄마가 나나를 보며 외쳤다.
“숨 차게 왜 그렇게 뛰어?”
나나의 머리가 천장에 닿을 듯 말 듯 하다.
“난 말이야, 엄마. 특별한 아이가 맞아.”
나나의 호흡이 가쁘게 뛴다. 뛰면서 반동에 의해 나나의 긴 머리가 천장에 닿을 듯하다.
“이렇게, 이렇게, 헐떡이는, 특별한, 심장을 갖고 있는, 특별한 아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