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장을 연임하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학장이라는 자리가 결코 쉬운 자리는 아닐 것이라고 감히 예상해 봅니다. 연임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앞으로의 마음가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난 <VISION ROAD> 인터뷰를 통해 말씀드렸던 것처럼 학장의 임기가 길지 않기 때문에 당면한 과제들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6개월 이내에 준비를 마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신없이 달려왔습니다. 임기 동안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자 마음이 조급했던 탓에 시간이 더욱 빨리 지나간 것도 같습니다. 우선 ‘서울의대답게, 대학이 중심으로, 모두 함께 멀리’라는 방향성은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충분히 공유됐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세 가지 방향성에 대해 제가 공약으로 내세웠던 구체적인 계획 중 마무리 짓지 못한 것들이 있어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특히 제가 연임을 생각한 가장 큰 계기는 ‘통합 6년제’ 교육과정의 마무리입니다. ‘통합 6년제’로의 교육과정 변화가 2~3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작년에 ‘6년제 교육과정준비위원회’를 출범해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갑작스럽게 통합 6년제로 변화가 생기면서, 이를 ‘개발위원회’로 전환했습니다. 교육과정 개편은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가야 하는 부분이라 제가 시작한 만큼 마무리를 짓고자 합니다. 또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도서관을 4년째 짓고 있습니다. 4년이라는 시간 사이에 물가가 많이 오르면서 건축비도 올랐습니다. 이런 부분은 본부에서도 도와주지만, 의과대학이 돈을 모금해서 충당해야 하는 부분이라 다음 학장님께 넘기기보다 제가 마무리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교수님들께서 저의 연임을 이렇게까지 지지해주실 거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교수님들의 지지는 곧 저의 방향성이 ‘맞다’라고 이야기해주신 것이고, 2년 연임 동안 구체적으로 ‘보여줘라’라는 기대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마음의 여유를 갖고 방향을 보면서, 이전보다 더욱 담대하게 나아가겠습니다.

Q
2022년 <VISION ROAD> 인터뷰를 통해 서울의대가 나아갈 방향성으로 ‘서울의대답게, 대학이 중심으로, 모두 함께 멀리’라는 세 가지를 말씀해 주셨는데요. 방향성에 맞춰 서울의대는 어떻게 변화했는지, 혹은 어떤 변화를 앞두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학장으로서 말씀드렸던 서울의대의 방향성이자 핵심 가치는 ‘서울의대답게, 대학이 중심으로, 모두 함께 멀리’였습니다. ‘서울의대답게’는 서울의대의 수월성과 그에 더해진 리더십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리더십이란 단순히 탁월함의 개념이 아니라 아카데믹 리더십과 퍼블릭 리더십입니다. 실제로 아카데믹 리더십과 퍼블릭 리더십을 키울 수 있도록 의학연구원, 의학교육연수원, 건강사회개발원의 3원 체제를 확립시켜 많은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방향성을 공유해왔습니다. 최근 필수의료, 의대 정원 증원, 의학 교육의 문제 등 의료계 현안들이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올해 6월 고등교육법 시행령이 바뀌면서 1924년에 만들어진 의학과 제도가 100년 만에 큰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현재의 의예과 2년, 의학과 4년의 6년제가 사라지고, 통합 6년제로 가는 변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인 요구와 전 국민의 관심사인 의료계의 변화, 의대 정원 증원, 의학 교육 통합 6년제에 따른 변화 등은 결국 병원이 아닌 ‘대학이 중심으로’ 가야 하는 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렸던 것이 ‘모두 함께 멀리’입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교수들은 임상과 기초로 나뉘고, 임상에 있는 분들도 근무지가 세 개로 나뉩니다. 또한 성별, 출신 학교 등이 다릅니다. 이렇듯 단일화된 배경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교수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저는 모든 정책이나 실행 과제의 우선순위를 ‘다양한 배경’에 두고 진행해 왔습니다. 여러 방향성 중에서도 ‘모두 함께 멀리’라는 방향성에 대해 많은 교수님들도 공감해주셔서 제가 연임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라 생각하며, 보람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필수의료, 의대 정원 증원, 통합 6년제로의 변화 등 의료계의 현안들이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면서 대학 중심의 정체성 확보가 더욱 중요해진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 ‘서울의대의 정체성’은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할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대학의 정체성은 결국 ‘교육’과 ‘연구’입니다. 특히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은 ‘사회적 책무성’을 함께 갖고 있습니다. 서울의대는 2016년 ‘서울 2016 이종욱 교육과정’이라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의예과가 없어지고 통합 6년제가 됐을 때, 새로운 2.0 버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존 교육과정이 의학과 중심의 교양 교육이었다면, 새로운 교육과정은 전 학년에 걸쳐 리더십 교육뿐만 아니라 시대의 소명인 4차 산업혁명에 따른 AI, 빅데이터, 가상현실 등을 포함해 개편해야 하는 숙제가 있습니다.
연구 분야를 보면 ‘의사과학자 양성’이 있습니다. 기초 의학자를 포함해 임상에서 진료를 보는 의사들 중 진료는 20%, 연구를 80% 하는 임상 의사들을 의사과학자라고 합니다. 서울의대는 15년 전부터 대학원 과정에 의과학과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융합형 의사과학자 프로그램을 포함해 의사과학자양성위원회를 만들어 학부생부터 레지던트, 전일제 대학원, 박사후과정, 신진 연구자, 교수까지 전 주기에 걸친 의사과학자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해왔습니다. 작년에는 의사과학자양성사업단을 출범시켜 꾸준히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해서도 서울의대의 정원이 증원된다면, 단순한 의사가 아니라 의사과학자를 키워내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대학의 정체성은 교육과 연구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특히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은 ‘사회적 책무성’을 함께 갖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이와 관련해 서울의대는 어떠한 준비와 노력을 이어가고 있나요?
서울의대는 지난 8월 건강사회개발원을 출범해 사회적 책무성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건강사회개발원 산하에는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 통일의학센터, 국민건강지식센터, 지역의료혁신센터가 있습니다. 서울의대는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를 통해 국제 보건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고, 통일의학센터를 통해 통일 이후의 의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통일 이후 가장 큰 문제는 정치, 경제 문제가 아니라 의료 문제입니다. 현재 남한과 북한의 의료 패턴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이 될 경우를 대비할 수 있는 것은 서울의대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서울의대는 11년 전부터 통일의학센터를 만들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여러 사람들이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로 국민들을 불안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지식들이 많이 전달됐습니다. 이럴 때 정확한 정보를 드릴 수 있도록 만든 것이 국민건강지식센터입니다. 최근에는 지역, 지방의 헬스케어를 도와줄 수 있는 지역의료혁신센터까지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들을 통해 서울의대의 정체성이라고 하는 교육, 연구, 사회적 책무성에 대해 꾸준히 노력을 해왔고, 앞으로 조금 더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2023년 <VISION ROAD> vol. 12의 콘셉트는 ‘시그니처(정체성)’입니다. 학장님만의 시그니처를 꼽자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유도 함께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의 시그니처는 ‘책임감’과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첫 임기 때 조급한 마음으로 바쁘게 달려왔던 이유도 다른 교수님들께 ‘내가 이 방향으로 가겠다’라고 했던 것들에 대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가 말한 것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기에 다른 교수님들과 힘을 합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뢰, 신뢰를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자 제가 꼭 지키려고 하는 목표는 ‘모든 약속에는 반드시, 최소한 10분 전에는 간다’입니다. 책임감과 신뢰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데, 저의 시그니처로 꼽고 싶습니다.
Q
학생이자 의료인으로서 혹은 다양한 진료과 선택, 통합 6년제로의 변화와 학제 개편 등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을 의대생과 서울의대를 꿈꾸는 예비 의대생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현재 서울의대 학생들과 예비 서울의대 학생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은 ‘서울의대답게’라는 리더십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40여 개의 다른 의과대학과 달리 서울의대 학생은 밝은 사회를 위해 공헌해야 합니다. 또한 나라의 미래의 성장 동력을 만드는 의사, 즉 의사과학자를 꿈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의대 정원을 증원한다면, 단순한 정원 증원보다는 의사과학자를 만들 수 있는 학제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물론 사회적 책무성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에게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저는 항상 세 가지 키워드를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는 포용과 승복, 두 번째는 공감과 소통, 마지막은 희생과 배려입니다. 이 세 가지가 제일 중요한 덕목입니다. 서울의대에 입학한 학생들은 어마어마한 경쟁에서 이긴 사람입니다. 경쟁에서 진 사람도 포용할 수 있고, 반대로 내가 경쟁에서 지더라도 이긴 사람에게 승복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정보가 비대칭할 때는 ‘나를 믿고 따르라’라고 하는 카리스마가 리더십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모든 사람이 같은 정보를 갖고 있다면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공감하고 소통하는 리더십일 것입니다. 요즘 친구들은 모두 공감과 소통을 잘하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내면을 찔러보면 ‘내가 잘나서 대단해서 서울의대에 들어왔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에 대해 나는 항상 혜택을 받았다는 겸손한 자세를 갖고 내가 받은 혜택을 돌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의대생이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소외된 약자를 돌보고, 받은 혜택을 돌려주는 희생과 배려가 세 가지 덕목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에 서울의대생이 될 학생들도 이런 덕목들에 대해 알았으면 좋겠고, 물론 잘 모르더라도 교육을 통해서 알아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또한 이런 교육을 위해 팀 스포츠, 독서, 현장 중심의 교육 등을 새롭게 진행될 통합 6년제 교육과정에 꼭 넣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Q
마지막으로 학장님께서 꿈꾸시는 앞으로의 목표, 계획 등이 궁금합니다.
저는 학장 임기가 끝나면 퇴임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저의 본분은 서울의대 학장이 아니라 사실 신경외과 의사입니다. 요즘 흉부외과, 소아과, 산부인과를 필수의료라고 하는데, 신경외과도 필수의료 중 하나입니다. 흔히 3D라고 하죠. 더럽고(dirty), 힘들고(difficult), 위험한(dangerous)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신경외과를 선택했고, 다른 친구들도 선택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신경외과 의사의 좋은 본보기’가 되고자 합니다. 신경외과를 어렵게 느끼는 친구들을 잘 이끌어주면서 저 또한 신경외과 의사로서 잘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