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사는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의사가 모여 있는 환경 속에서
좋은 의사가 배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환경 속에서 좋은 의사가 배양된다

세상에는 다양한 의사가 있다. 치료를 잘하는 의사, 환자에게 친절한 의사, 좋은 연구 성과를 내는 의사 등 사람마다 혹은 상황마다 좋은 의사의 기준은 달라진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교육실장 박완범 교수는 좋은 의사는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의사’라고 말했다. “좋은 의사는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 많은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의과대학과 수련병원의 문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화하여 말씀드리면 좋은 의사가 모여 있는 환경 속에서 좋은 의사가 배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은 이미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서울의대는 학업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학생들로 가득하다. 그뿐만 아니라 교수들의 교육에 대한 열의는 다른 의과대학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학업에 대한 자기 희생은 자연스럽게 학생들을 성장하게 만든다. 물론 좋은 건물과 강의실, 연구실 등 물적 환경도 중요하다. 하지만 교육에 있어 인적 환경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학생들은 주변의 선후배들을 통해 학업에 대한 열정적인 태도와 그에 따른 교육문화를 자연스럽게 체득한다. 또한 자신들이 성장했을 때, 그것을 가르치고자 하는 좋은 교육 환경의 선순환이 이뤄진다.

의학교육의 혁신을 주도하는 주체이자 리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교육실은 1998년 30명의 겸임교수로 시작해 전국 의과대학에 의학 교육 모델을 전파해 왔다. 국내 최초로 인문·사회·의료 교육과정을 통합한 환자·의사·사회(PDS: Patient-Doctor-Society) 교육과정과 장기추적통합임상실습(Longitudinal integrated clerkship)을 도입해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또한 모든 학생들이 연구에만 전념하는 10주의 ‘연구과정’을 신설해 연구역량교육을 강화시키는 등 지난 20여 년간 의학교육의 혁신을 주도하는 주체이자 리더로 의학교육 분야의 지속적인 발전과 혁신을 촉진하는 데 공헌하고 있다.
이러한 서울의대 의학교육실의 노력은 2022년 11월, KAMC 학술대회에서 ‘2022년도 KAMC 제11회 의학교육혁신상’을 받으며 다시 한번 인정 받았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매년 의학교육과 연구, 봉사 분야에서 헌신한 개인과 기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올해의 교수상과 의학교육혁신상을 공모하고 있다. 의학교육혁신상은 의학교육의 창의적 혁신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 수련병원 등 의학교육 관련 기관 또는 부서를 대상으로 추천을 받아 공적의 탁월성과 혁신성, 의학교육에의 발전 기여도를 심사하여 선정하는 상이다.
현재 서울의대 의학교육실장인 박완범 교수는 2005년부터 의학교육실과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의학교육실은 의과대학의 의학교육 전체를 총괄하는 곳이다. 본과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전체 의학교육의 기획부터 운영, 평가 등 학생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 박완범 교수는 의학교육실장으로 의학교육실 전담교수 4명과 의학교육실 담당교수 4명, 총 8명과 함께 의학교육실을 운영하고 있다. 의학교육은 단순히 의학 지식과 기술만을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 양성을 전제하기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의학교육실은 서울의대의 ‘악역’이 되기도 한다.
“의학교육실은 의학교육을 위해 학생들이 싫어하는 일을 시켜야 하는 곳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에게 엄격한 평가를 한다거나 학생들이 더 열심히 학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채찍질을 해야 하는 업무이기 때문입니다. 교수님들께는 교육 관련 추가 업무를 부탁드리는 등 부담을 드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졸업할 때가 되어, 어느덧 훌륭한 의사가 될 준비가 되어있는 학생들을 마주할 때 많은 보람을 느낍니다.”
박완범 교수는 의학교육을 위한 일이 학생과의 갈등, 교수와의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훌륭한 의사가 될 준비되어 있는 학생들을 마주하며 큰 보람을 얻는다고 말했다.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과정

의학교육의 기본적인 목표는 전문성을 갖춘 유능한 의사를 육성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연구자와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키우는 것도 중요한 목표이다. 사회적 변화에 따라 의료 윤리, 의사소통 능력, 팀워크 등 다양한 능력을 요구받기도 한다. 특히 서울의대는 ‘국립’이라는 특성상 리더로서의 자질도 요구받는다.
박완범 교수는 “서울의대는 학생들이 단순히 최신 지식을 갖고 이를 활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현재 의학이 갖고있는 한계를 인식하고 각자의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이를 위해 서울의대는 학생들이 기본적인 연구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대는 의예과에 ‘의학연구의 실제’, 의학과 2학년에 다른 수업 없이 연구에만 집중하는 10주의 ‘의학연구2’ 과정, 의학과 4학년에 다양한 연구체험을 할 수 있는 5주의 ‘심화선택’ 과정 등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속연구과정’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학생들이 6년 동안 특정 주제를 선택하여 꾸준히 연구 활동을 하는 경우, 졸업 시 ‘수료증(micro-degree)’을 수여할 예정이다. 실제로 일부 학생들은 정규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방학 등을 활용하여 다양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의대는 이러한 학생들을 선발하여 의학과 4학년을 마칠 때 ‘연구 포트폴리오상’을 수여하고 있다.

시대적 흐름에 발맞춘 새로운 교육과정

지난 6월 고등교육법 시행령이 바뀌면서 전국의 의과대학은 의학과 설립 100주년을 앞두고 통합 6년제 학제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의대도 지난 8월 22일 ‘의과대학 6년제 교육과정 개발위원회’의 발대식을 개최하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의대 교육은 의예과 2년, 의학과 4년의 6년제로 예과, 본과로 나눠서 교육을 진행해 왔다. 의예과 생활이 갖는 장점도 많이 있지만, 의예과와 의학과의 단절로 인해 나타나는 부작용과 아쉬움도 많았다.
“의예과 성적은 의학과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졸업할 때 의학과 성적만으로 졸업을 하기 때문에 의예과에서 어떤 성적을 받든 의사가 되는 데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의예과와 의학과의 단절이 갖는 장점과 단점은 결국 연결됩니다. 의예과 때 공부를 안 하고 놀아도 문제가 없기 때문에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큰 장점이 됩니다. 반대로 의예과 성적이 의학과에 반영되지 않아 수업 태도가 좋지 않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통합 6년제가 되면 학생들의 수업 동기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됩니다. 또한 의학과에 몰려있는 공부량에 대한 학생들의 부담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완범 교수는 의예과와 의학과의 단절에서 오는 부작용 외에도 4차 혁명 시대에 현재 의대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다양한 내용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입학 초기부터 졸업 때까지 반복적인 노출과 점진적인 심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학교육 전문가들은 지속적으로 의예과와 의학과를 통합한 6년제로의 변화를 주장했고, 드디어 올해 각 의과대학이 6년제를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6년제로 변화를 통해서 의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소통 및 공감 능력, 윤리의식, 공공의료정신, 프로페셜널리즘 등에 대한 나선형 교육을 할 수 있다. 또한 AI, 빅데이터, 의료정보학 등 최근 발전하고 있는 새로운 분야를 소개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고, 의예과에 집중되어 있는 교양 교육을 6년 전체로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통해 합의를 이루는 것이 목표

통합 6년제로의 교육과정 변화는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학생과 교수들도 우려와 기대를 모두 갖고 있다. 학생들은 현재의 빡빡한 본과 생활을 조금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것을 기대하는 반면, 빡빡한 4년 교육과정이 6년으로 확대되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교수들은 의예과 학생들의 학습 태도의 변화를 기대하는 한편, 의예과 교양 교육의 축소를 많이 우려하고 있다. 서울의대 의학교육실은 이러한 학생과 교수님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여 새로운 과정을 기획하고자 한다.
서울의대는 올 한 해 동안 통합 6년제에 대해 학생과 교수를 대상으로 다양한 의견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서울의대 구성원들은 학생들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교육과정을 가장 선호했다. 이에 서울의대는 6년제 교육과정을 학생 한 명, 한 명의 다양한 능력과 성향을 인정하고, 자율적으로 각자 원하는 분야를 심화,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의 리더가 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한다.
“다양한 분야의 리더를 만들기 위해 방학 기간을 충분히 확보해 학생들에게 다양한 자율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연구 학기제를 도입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심화선택과정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서울의대 ‘의과대학 6년제 교육과정 개발위원회’는 현재 분야별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약 80여 명의 교수들이 교육과정안을 개발 중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다양한 의견을 최대한 취합하고 합의를 형성하는 것이 개발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교육시설 등의 환경, 학점제도, 규정 등 제반 여건을 점검하고 필요 시 개편해나갈 계획이다.
“의학지식은 빠르게 늘어나고 변화하며, 교육 테크놀로지, 사회 환경, 학생들의 성향 또한 급변하고 있습니다. 의과대학의 교육과정, 환경, 제도 등 의학교육 역시 이에 발맞추어 변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변화를 위해 현재의 교수님과 의대생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 속에서 미래의 훌륭한 의사 한 명, 한 명이 피어날 것으로 믿습니다.”
박완범 교수는 초등학생 때부터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꿈이었다. 비교적 빨리 꿈을 이룬 그는 국내 최고의 인재를 가르치는 기쁨까지 누리고 있다. “앞으로도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더욱 기쁜 마음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꿈을 펼치겠다”고 말하는 그의 행보를 기대해본다.